2026년 9월 12일 QT 본문: 요한복음 13:21–30

1. 오늘 내게 주신 말씀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 요한복음 13:2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 요한복음 13:26
예수님은 자신을 배신할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계셨고 그 일로 심령이 괴로우셨다.
그러나 그 괴로움과 감정에 따라 유다를 대하지 않으셨다.
유다를 공개적으로 폭로하여 제자들이 그를 비난하거나 막도록 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식탁에서 떡 한 조각을 직접 건네셨다.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고 계시면서도 아버지의 뜻을 따라 그 길을 담대히 걸어가셨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나 역시 상대방의 태도가 나의 태도를 결정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2. 오늘 내가 발견한 하나님
오늘 나는 예수님의 인내와 절제, 사랑과 담대함을 발견했다.
예수님은 유다의 배신을 모르셨기 때문에 침착하셨던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알고 계셨고, 그래서 오히려 심령이 괴로우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괴로움을 유다에게 분노와 냉랭함으로 돌려주지 않으셨다.
자신을 배신할 사람이라는 것을 아시면서도 같은 식탁에 앉으셨고 떡을 건네셨다.
예수님의 사랑은 상대방이 사랑받을 만하게 행동하기 때문에 주어지는 사랑이 아니었다.
또한 예수님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고 계시면서도 피하지 않으셨다.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이 말씀에서 상황에 끌려가시는 예수님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알고 담대하게 그 길을 걸어가시는 예수님을 본다.
예수님의 절제는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보다 아버지의 뜻과 사랑을 더 크게 붙드셨기 때문에 가능한 절제였다.
3. 본문 내용에 대한 배경이나 본문 이해를 위한 정보
당시 식사는 오늘날처럼 의자에 반듯하게 앉아 먹기보다 낮은 식탁 주변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어 먹는 방식이 사용되었다.
그래서 23절의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와 25절의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라는 표현은 예수님 곁에 아주 가까이 자리했던 제자의 위치와 움직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23절의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는 전통적으로 요한으로 이해되어 왔지만, 본문 자체는 여기서 그의 이름을 직접 밝히지 않는다.
베드로는 가까이 있던 그 제자에게 머릿짓을 하여 예수님께 배신자가 누구인지 물어보도록 했다.
예수님은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고 말씀하시며 유다에게 떡을 건네셨다.
본문에서 이 행동은 배신자를 알려주는 표지였다.
동시에 식탁에서 직접 음식을 건네는 행동은 호의적인 행동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었기 때문에, 다른 제자들은 그 행동만으로 유다가 배신자라는 사실을 즉시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28–29절을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고, 돈궤를 맡고 있던 유다에게 명절에 필요한 것을 사거나 가난한 사람에게 무엇을 주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예수님의 목적은 유다를 공개적으로 폭로하여 제자들이 그를 공격하거나 배신을 막게 하는 데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앞선 13:19에서 예수님은 일이 일어나기 전에 말씀하시는 이유를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그 순간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모든 일이 지나간 뒤 예수님께서 이미 알고 계셨음을 기억하며 그분이 누구신지를 더욱 분명히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다는 떡을 받고 밖으로 나간다.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 요한복음 13:30
실제로 밤이었지만, 빛과 어둠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요한복음의 흐름을 생각하면 빛이신 예수님 곁을 떠나 밤으로 걸어가는 유다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다. 다만 요한이 여기서 ‘밤’을 상징이라고 직접 설명하는 것은 아니므로 문학적인 울림으로 조심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4. 오늘의 핵심 문장
상대방의 태도가 나의 태도를 결정하게 하지 말자.
불편한 마음은 정직하게 인정하되, 나의 말과 행동은 그 감정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과 시선이 결정하게 하자.
나는 상대방의 태도를 따라 반응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을 따라 반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5. 오늘 말씀을 삶에 적용
직장에서 한 요양보호사 선생님과 오해가 생긴 이후 서로 인사 정도만 하고 냉랭하게 지내게 되었다.
그 선생님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어르신들 앞에서는 내 감정을 드러낼 수 없었지만 마음속에는,
“그 선생님도 나와 관계를 개선하려 하지 않는데 내가 굳이 먼저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상대방이 나를 대하는 방식대로 나도 그 사람을 대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오늘 유다를 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모습을 돌아본다.
예수님도 괴로우셨다.
그러므로 나에게 불편한 감정이 생기는 것 자체를 부정하거나 억지로 없애려고 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 감정이 나의 말과 행동을 결정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겠다.
그 선생님이 먼저 관계 개선을 원하는지, 나에게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기준으로 삼지 않고 내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대할지를 생각하겠다.
거창하게 관계를 회복시키려고 하기보다 먼저 내 쪽의 냉랭함부터 거두겠다.
먼저 눈을 맞추며 밝게 인사하고, 필요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나누며, 함께 어르신들을 돌보는 과정에서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는 기꺼이 돕겠다.
상대방이 여전히 냉랭하게 반응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다시 냉랭해지지 않도록 하겠다.
관계의 회복은 두 사람이 함께해야 하지만, 사랑을 선택하는 것은 나에게서 먼저 시작할 수 있다.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나 자신에게 물어보겠다.
“지금 나는 이 사람의 태도에 반응하고 있는가, 아니면 예수님의 마음으로 반응하고 있는가?”
상대의 반응은 내가 결정할 수 없지만, 내가 어떤 마음과 태도로 그 사람을 대할지는 선택할 수 있다.
오늘도 나를 보내신 예수님의 마음과 시선으로 사람을 바라보고 대하는 사람이 되자.
6. 큐티를 마무리하는 기도
주님,
오늘 유다의 배신을 이미 알고 계시면서도
그를 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마음이 괴로우셨지만
그 괴로움에 이끌려 행동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의 뜻과 사랑을 따라
끝까지 절제하며 걸어가신 예수님을 봅니다.
저는 사람들과 관계하면서
상대방이 나를 대하는 모습에 따라
나의 태도를 결정할 때가 많았습니다.
나에게 차갑게 대하면 나도 차갑게 대하고,
나를 오해하면 마음의 문을 닫고,
상대가 다가오지 않으면
나 역시 굳이 다가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제 마음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불편한 감정을 억지로 감추는 사람이 아니라
그 마음을 주님께 솔직하게 가지고 가되,
그 감정이 나의 말과 행동의 주인이 되지 않게 해주세요.
상대방의 태도가 나의 태도를 결정하게 하지 말아주세요.
상대가 어떻게 반응하든
예수님의 마음과 시선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게 하시고,
내 쪽의 냉랭함을 먼저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를 주세요.
관계의 결과를 제가 만들어내려고 하지 않고
제가 해야 할 사랑을 선택하게 해주세요.
앞으로 비슷한 상황을 만날 때마다
오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시고,
“나는 지금 상대방의 태도에 반응하고 있는가,
아니면 예수님의 마음으로 반응하고 있는가?”
스스로 물으며 행동하게 해주세요.
나를 먼저 사랑하시고
오늘도 세상 가운데 보내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가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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